겨울의 끝자락에 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립니다. 일기예보 상으로는 기온이 그다지 낮지 않아 조금 멋을 내보려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가면 금세 후회가 됩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겁니다. 봄까지 기다리기에는 창으로 들어오는 찬란한 햇살의 유혹이 너무 진하게 발길을 이끕니다. 지난주 어느 밤에, 즐겨 찾는 여행앱에 들어갔다가 좋아하는 브랜드 호텔 특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할인쿠폰까지 다운로드하니 성수기 요금에 비하면 거의 삼분지 일의 금액으로 내일 1박을 할 수 있더군요. 냉큼 예약을 합니다. 마침 신랑님께서도 시간이 나신다기에 저는 마음이 한껏 들떠서 여행 캐리어를 꺼내서 1박에 필요한 기본 여행짐을 챙깁니다. 기본만 챙겼는데도 두 사람 여행 짐을 작은 캐리어 하나에 넣으니 꽉 차고 맙니다.
강원도는 평상시 갑자기 바다가 보고싶거나 혼자 생각을 정리할 것들이 많을 때면 차를 몰고 하루이틀 특별한 준비 없이 다녀오곤 해서인지 1박 2일 먹고 쉬는 일정이 금세 머릿속에 정리가 되어 나옵니다. 신랑에게 나만 믿고 다녀오자 하며 먹고 쉬는 강원도 1박 2일을 잘 다녀왔습니다.
경기도에서 아침 9시에 출발해서 가면서 휴게소 두어번 들러 기름도 넣고 화장실도 이용하고 커피도 한잔하여 점심은 강릉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강원도가 의외로 먹을 것들이 많아 갈때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맛집을 선정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저는 평상시에도 막국수를 즐겨 먹는지라 강원도에 유명한 막국수집은 꽤 많이 찾아 먹어봤습니다. 집집마다 맛의 특성이 있는데 조미료 맛보다는 막국수 본연의 담백함을 좋아합니다. 이번엔 유명 브랜드를 내건 집인데 본점에 갔습니다. 작년에 가 봤을 때 매우 흡족했거든요. 막국수 한 그릇씩 먹으면서 메밀 전을 한 접시 시켜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동치미국물과 무가 담긴 단지에 얼음이 둥둥 떠있는 국물을 국수그릇에 넣어서 먹는데 그 맛이 정말 깔끔하고 시원합니다. 얇게 부친 메밀 전은 두 장이 붙어서 한 접시에 나오는데 금방 부쳐 나온 뜨끈한 메밀 전이 막국수의 담백함과 어우러져 강원도의 맛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계절에 딱 맞는 맛입니다.
1일차, 강릉에서 점심식사
이렇게 맛난 점심을 즐기고 디저트를 무엇으로 할까했는데 마침 강릉은 커피의 도시로 유명새가 있고 유명 커피집이 많기도 합니다. 그중에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집을 가기로 하고 차를 몰았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바리스타를 하신 분이 운영하시는 유명 커피집인데 한 십 년 전쯤에 가본 기억이 있습니다. 역시 십 년의 세월은 많은 변화를 만들어 놓았더군요. 가는 길도 커피집도 많은 모습이 변해있어서 여기가 그 집 맞나 싶었습니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만들어낸 주변이 바뀐 거지요.
추억을 소환하며 오랜만에 바리스타가 내려준 드립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며 파도치는 겨울바다를 한동안 바라보다 나왔습니다.
자,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으니 이제 뜨끗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러 속초로 향했습니다.
사실, 지난해에 다녀온 척산온천이 가성비가 너무 훌륭하여 인상이 깊었었고, 최근에 온천 생각이 간절하던 터라 일정의 하이라이트를 온천으로 삼았습니다. 네이버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가면 조금 저렴하게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널따란 갖가지 탕과 사우나, 2층에 옥외탕까지 만원여 가격에 몇 시간 충분히 온천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두 시간정도 후에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신랑과 잠시 헤어집니다. 금탕, 냉탕, 건사우나, 습사우나, 옥외탕을 거쳐 셀프세신을 하니 시간이 얼추 되었습니다. 신랑과 입구에서 만나서 사이나 한 캔씩 마시는 행복감은 말 안 해도 다들 아실 겁니다.
점심을 꽤나 배불리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온천을 두어시간 하고 나니 출출해집니다. 저녁 메뉴도 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속초 하면 "물회"를 먹어주는 게 우리 시대의 국룰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유명맛집이 꽤나 있습니다만 이번엔 유명하지만 안 가본 곳을 가기로 합니다. 저는 물회를, 신랑은 회덮밥을 주문했습니다. 사실 물회는 작년에 먹었던 곳이 더 좋았고 회덮밥은 훌륭했습니다. 역시나 처음 가보는 곳은 기본메뉴를 다르게 주문해서 먹는 게 좋습니다. 둘이서 서로의 메뉴를 평하며 사이좋게 나눠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저녁해가 꽤나 길어진 편이라 식당에 들어갈 때는 해가 꽤 있었는데 먹으면서 어둠이 몰려온 바다를 감상하며 먹느라 더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녁식사까지 훌륭히 해내고 고성에 있는 숙소로 향합니다. 고즈넉한 해변가에 홀로있는 숙소는 조용하고 깨끗하고 실내에 들어섰을 때 코끝에 다가오는 아로마가 향기롭고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줬습니다. 일반뷰로 했는데 해변가 앞의 호텔이라 실재는 오션뷰라 모처럼 밤바다의 적막과 청량한 파도소리와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온천을 한 터라 꿀잠을 자고 아침일찍 눈을 떠서 동해의 멋들어진 일출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식사는 순한 가정식백반을 먹고싶어서 근처 순두부집으로 갔습니다. 바닷가 변에 있는 가정집을 음식점으로 하는 곳이었는데 깔끔한 밑반찬과 메인메뉴인 얼큰순두부를 둘이서 게눈 감추듯 먹었습니다. 어쩌면 반찬 하나하나가 다 그리도 맛깔스러운지 식탁에서 설거지를 한 느낌으로 깨끗이 비우고 나왔습니다.
워낙에 호텔에서 숙박하는 경우는 조식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음식이 맛있는 곳에서는 한 끼도 소중한지라 지역음식을 맛보고싶은 생각에 이렇게 음식점을 찾는 것이 항상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일정의 마무리는 이 지역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경치도 감상하기로 합니다. 좋아라하는 울산바위와 설악의 산새도 보고 동해의 아름다운 해안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기에 찾아가 봅니다. 역시나 소문대로 절경이었습니다.
언제고 여유로운 휴가를 와서 한 반나절 경치바라보며 앉아있다 가고픈 곳이었습니다.
자, 이렇게 1박2일의 짧지만 알찬 강원도여행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떠나면서 봄바다를 그려봅니다.
2일차, 숙소에서 바라본 동해일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