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3단계의 설렘으로 구성되는 삶의 한 파트라고 생각합니다. 준비의 설렘, 여정 중의 설렘, 추억하는 설렘. 지난 연말에 갑자기 떠났던 오사카 3박 4일을 추억하는 설렘을 가져볼까 합니다.
국내 아니고 해외여행의 경우에는 장고의 준비를 거쳐 마침내 짧은 일정의 여행을 하며 아쉬움을 느끼는 게 일반적인데 가까운 일본은 더구나 한 두 차례 다녀본 도시의 경우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불현듯 다녀올 수 있어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연말에 큰 이벤트를 앞둔 상황에서 신랑님이 갑자기 일본여행을 제안했습니다. 머릿 속도 복잡하고 어디 여행 떠날 상황이 아닌 듯싶었지만 때로는 절차적 정당성을 뒤로한 채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때도 있는 법이라며 하루 만에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다녀왔더랬습니다.
연말이라 오사카 티켓은 이미 매진이어서 근처 도시를 알아보니 마침 나리타 티켓이 눈에 띄어 옳다구나 예약을 했습니다.
오사카는 보통 도톤보리 주변을 많이들 가고 돈키호테의 저렴이 센스 넘치는 쇼핑과 오사카성의 벚꽃을 떠올립니다. 저도 처음 오사카를 갔던 시절에는 그랬습니다. 기억 속의 그 시절에는 먹거리와 쇼핑거리가 넘쳐나는 오사카 거리에 수많은 인파 속의 한 사람이 되어 거리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 분위기의 주인공인 양 즐겼었다면 지금에서의 느낌은 그런 인파를 멀찌감치서 바라보며 그 마저도 볼거리이고 아, 활기찬 분위기, 하며 거리를 걸어보고 붐비는 거리를 지나 조금 한적하고 별로 유명하지 않은 동네 음식점에 들어가서 맛있어 보이는 메뉴를 대뜸 주문하고 가게의 요모조모를 살피며 음식을 맛있게 먹어줍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오사카는 예전 그 수많은 인파가 여전했으며 관광객들은 동서양인이 뒤섞여 한창 붐비는 저녁시간에는 인파에 밀려 걸을 정도였고 도톤보리의 음식점과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그런 도심의 활기로움도 느끼고 외곽으로 기차 타고 온천도 즐기고 하는 여유로운 쉼의 시간을 갖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정은,
첫날, 나고야로 입국해서 오사카로 이동, 저녁을 보내고
둘째 날은, 고베로 기차 타고 아리마온천마을로 당일 온천여행을 다녀오고,
셋째 날은, 나고야로 이동하여 나고야 도심을 여유로이 지내고 돌아오는 것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일본의 온천은 개인여행으로나 패키지여행으로도 다녀봐서 그 깊은 매력을 알기에 이번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중에서 찾아보다 아리마온천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이 온천마을이 아주 예쁩니다. 소소한 가게들로 산 밑에 형성된 마을이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으로 가득합니다. 갖가지 먹거리와 예쁜 소품가게들이 즐비한 온천마을은 온천을 진하게 만끽한 후 거리를 여유로이 걸으며 먹고 보고하는 것이라 더 그 여유로움이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오래된 온천이라고 하는데 사실 크게 다른 곳보다 물이 좋다거나 하는 것은 느끼지 못했지만 기차 타고 도착한 역의 분위기와 역사를 나와 마주하는 일본 특유의 시골마을 분위기가 합쳐져서 플라세보의 효과가 더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 일단 점심식사를 하려고 둘러봤는데 마을 진입로에 있는 허름한 미닫이 문의 라멘집을 들어가 봤습니다. 들어서니 식당 안이 그렇게 활기찰 수가 없었습니다. 오픈된 주방에 다이에 앉거나 일반 좌석에 앉아 있는 손님들이 왁자지껄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멘과 교자등을 맛있게 먹고 있고 주방에서는 노년의 부부가 묵묵히 빠른 손으로 음식을 준비하면서 주문도 받고 계산도 하고 있었습니다.
단언컨대, 일본 어느 유명 맛집에서 먹은 라멘보다도 맛있는 인생라멘이었습니다. 아, 이런 집이 노포 중에 노포라고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감탄을 연발하며 라멘 한 그릇을 완멘을 하고 옆 좌석에서 먹고 있는 교자가 너무 군침이 돌길래 라멘 먹다 중간에 교자도 추가해서 먹었는데 세상에 그렇게 입에 감겨드는 교자는 홍콩 유명 맛집에서 먹었던 것보다도 훨씬 맛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온천마을까지 오는데 쉽지 않았는데, 기차로 가자니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고 버스로 가자니 앞 뒤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전철에 기차에 갈아타서 거의 반나절을 소요해서 온 참이니 풍경도 음식도 더 각별히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마을 입구를 들어서서 언덕길을 한 20여분 걸어서 목적지 온천에 도착했는데 입장객의 절반이상은 한국 분들이었고 온천장의 규모와 역사에 놀랐습니다. 온천을 중심에 두고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자신만만하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한편 부러웠습니다. 막상 온천욕탕에 들어가면 다 거기서 거기인데 그 지점까지 가는 여정이 참 길고 화려합니다.
온천을 마치고 나와 내부의 먹거리와 샵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이고 여정의 마무리를 한껏 즐길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는 레몬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탄산수를 마시며 목욕 후의 나른함을 즐겼습니다.
마치고 나오니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가 되었고 관광객들을 위해 정비된 상점의 거리로 발길을 돌려서 바로 튀겨내는 크로켓을 사 먹고 향긋한 커피도 마시고 맛있는 과자가게에 들러 지역 특산 과자도 샀습니다.
소소하지만 하나하나가 특색 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시간들이라고 자평하며 그날 호텔에 도착해서 모처럼 꿀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브런치를 먹으려고 호텔 주변 골목을 걸어 내려가다가 오래된 커피집이 정감이 느껴져 들어갔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직접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고 중년의 따님 같이 보이는 분이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를 만들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자르지 않은 통자 식빵이 주방 앞에 가득히 쌓여있고 주문을 받는 대로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를 만드는 모습, 옛날 팝송이 흐르고 오래된 일본 잡지가 잡지 거치대에 꽂힌 모습, 오래된 갖가지 찻잔들이 진열된 모습 등등이 참 추억 돋는 느낌이었습니다.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작지 않은 홀 안에는 대부분 서양 여행객들이었고 신기하게도 동양인 손님은 우리 테이블뿐이었습니다.
정성스레 만들어진 토스트와 삶은 달걀, 따뜻하고 적당히 진하게 내린 커피를 음미한 멋진 아침식사였습니다.
아침을 먹고 이동한 나고야는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 나름의 매력이 느껴지는 도시였습니다. 나고야역 근처로 숙소를 예약했었는데 짐을 풀고 주변을 걸어 다니며 마주한 높다란 현대식 쇼핑몰 속의 나고야는 뭔가 현대적인 일본의 전형을 갖추고 있어 보였습니다. 마침 크리스마스 앞이라 대형 쇼핑몰에서 보여주는 멋진 트리며 화려한 연말 색채가 가득했고 음식들 또한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있었습니다. 예전에 인상 깊게 먹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먹기 쉽지 않은 츠케면이 보이길래 한 그릇 맛있게 먹고 고층 빌딩에 위치한 스타벅스에서 도심의 야경을 만끽하며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여행이라는 게 뭔가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이 큰 미션이 되기도 하지만 익숙하고 편안함을 주는 장소에서 얻는 여유로움과 만족감이 주는 행복도 좋다고 느낀 3박 4일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