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마치 누구나 성지순례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큰 도시나 작은 도시나 모두 도시 안에 멋들어진 성당들을 가지고 있고 방문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성당 한 두 곳은 들르면서 도시를 여행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저도 유럽을 수차례 여행하면서 그들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성당들을 방문한 경험이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멋진 스테인드 글라스나 건축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성당 방문은 언제나 마음의 평화와 함께 눈의 호강으로 행복해지는 시간입니다. 방문 때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거나 책을 잠깐 보고 가더라도 깊이 있는 지식이 없다 보니 깊이 있는 감동은 못 느끼게 되는 아쉬움이 항상 남았더랬습니다. 이번에는 공부 아닌 공부를 조금 더 하고 가서 제대로 그들의 문화유산을 눈과 마음에 담아보려고 합니다.
수세기에 걸쳐 지어진 이탈리아의 성당들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닌 예술과 역사, 그리고 당대 사람들의 신앙이 응축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탈리아 성당 건축의 기초를 이룬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역사적 배경과 특징, 그리고 대표 건축물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
11세기부터 12세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번성한 로마네스크 양식은 고대 로마 건축의 전통을 중세적 감성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 시기는 봉건제도가 확립되고 수도원이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 자리잡던 때였습니다. 당시 유럽은 잦은 전쟁과 침략에 시달렸기 때문에 성당은 종교적 기능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는 요새 역할도 담당해야 했습니다.
로마네스크 성당의 건축적 특징
두껍고 견고한 벽체
반원형 아치(둥근 아치)
작은 창문과 어두운 내부 공간
단단한 석조 구조와 제한된 장식
십자가 형태의 평면 구조(라틴 크로스)
이러한 특징들은 당시의 기술적 한계와 방어의 필요성을 반영한 것으로, 견고함과 안정성을 우선시했습니다.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성당
**피사의 두오모(Duomo di Pisa)**
로마네스크 건축의 걸작으로, 건축가 부스케토(Buscheto)가 1063년에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흰색과 녹색 대리석의 화려한 외관과 다층 구조의 아케이드가 특징입니다. 피사의 유명한 기울어진 종탑(Leaning Tower)과 함께 피사의 기적의 광장(Piazza dei Miracoli)을 구성하는 핵심 건축물입니다.
**모데나 대성당(Duomo di Modena)**
란프란코(Lanfranco)가 설계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또 다른 훌륭한 사례입니다. 1099년에 착공된 이 성당은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조각가 빌젤모(Wiligelmo)의 뛰어난 부조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밀라노의 산트암브로조 성당(Basilica di Sant'Ambrogio)**
무거운 벽체와 소박하면서도 장엄한 내부 공간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본질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고딕 양식
고딕 양식의 역사적 배경
12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진 고딕 양식은 로마네스크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높고, 더 밝은 성당을 건축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도시의 성장과 상업의 발달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던 때로, 성당 건축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고딕 성당의 건축적 특징
고딕 양식 성당은 로마네스크와 확연히 구분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뾰족한 아치(포인티드 아치)
리브 볼트(교차 볼트)
플라잉 버트레스(외부 지지대)
높은 첨탑과 수직적인 강조
큰 창문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밝고 개방적인 내부 공간
이러한 혁신적인 건축 요소들은 벽을 얇게 만들고 높이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더 많은 빛을 내부로 끌어들일 수 있게 했습니다.
대표적인 이탈리아 고딕 성당
**밀라노 두오모(Duomo di Milano)**
이탈리아 고딕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1386년에 착공하여 약 600년에 걸쳐 완성되었습니다. 3,400개 이상의 조각상과 135개의 첨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어 '대리석 숲'이라고도 불립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고딕 건축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입니다.
**시에나 대성당(Duomo di Siena)**
1215년에 착공된 고딕과 로마네스크가 혼합된 독특한 양식의 성당입니다. 건축가 조반니 피사노(Giovanni Pisano)가 참여했으며, 흑백 줄무늬 대리석 외관과 정교한 모자이크 바닥으로 유명합니다.
**오르비에토 대성당(Duomo di Orvieto)**
화려한 고딕 파사드와 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된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특히 외벽의 조각 장식과 룩카 시그노렐리(Luca Signorelli)의 프레스코화는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적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로마네스크와 고딕 성당 제대로 감상하기
이제 이탈리아의 성당을 방문하면 로마네스크 성당의 두꺼운 벽과 어두운 내부, 고딕 성당의 높은 천장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전하는 메시지를 느껴보아야겠습니다.
성당마다 특정 시간대에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경우가 있으니, 방문 시간을 조절해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고딕 성당에 강한 햇빛이 비추이는 오전시간에 방문하여 더욱 환상적인 빛의 향연을 경험해보려고 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탈리아 성당 건축의 전성기를 이끈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겠습니다. 균형과 조화를 추구한 르네상스, 그리고 화려함과 극적인 효과를 강조한 바로크 양식이 어떻게 이탈리아 성당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끌어올렸는지 함께 살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