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사진첩 연도별 폴더를 뒤적이다 보니 작년 봄 혼자 떠났던 일본여행의 기록이 보이더군요. 사실, 지난달 봄이 오기 전 겨울설경을 즐기러 삿포로 여행을 계획했다가 계속되는 폭설로 비행기가 끝내 결항이 되는 바람에 일정이 취소되었더랬습니다. 엄마 모시고 가는 여행이라 무난한 여행사 패키지를 예약했지만 소소하게 준비할 것들을 나름대로 일백 프로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보냈었는데 말이죠. 눈꽃여행은 포기하고 이제 화사한 벚꽃 휘날리는 봄날의 여행으로 계획하는 중입니다. 물론 또 다른 패키지를 예약하기는 했지만 혼행도 생각하고 있어서 소소하게 여행계획 한번 세워보느라 정리하는 김에 함께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자, 그럼 2025년 일본 벚꽃 보러 그들의 소도시로 떠나보겠습니다.
일본의 봄, 벚꽃 시즌은 우리나라의 벚꽃시즌과는 또 다른 맛이 느껴집니다. 저는 작년에 4월 하순 경에 도쿄를 갔었는데 그때는 꽃은 지고 초록의 잎들이 한창 여름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이 3월 하고 벌써 중순을 향하고 있으니 늦지 않게 준비하고 떠난다면 올봄 일본에서 벚꽃놀이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일본여행을 많이 가서 이제 대도시는 식상해 하는 분들이 많고 소도시 여행이 붐이 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도시의 북적임보다 소도시에서 한가로이 거닐며 마을 정경과 노포 맛집을 즐기는 느낌은 색다른 휴식의 시간을 안겨줍니다.
함께 가도 좋지만 시간될 때 혼자서 훌쩍 떠난다면 추천할 만한 장소를 몇 군데 소개해 봅니다.
1. 츠와노(Tsuwano, 시나마 현) - 전통 활쏘기 축제를 볼 수 있는 성터 마을
시네마현의 작은 성터 마을인 츠와노는 "산인의 작은 교토"라는 닉네임을 가질 만큼 일본 전통미가 넘치는 매력적인 소도시입니다. 작은 규모의 도시에 옛 모습이 잘 보존된 거리와 붉은 토리이가 유명하고 일 년 내내 혼자 여행하기에 안전한 분위기입니다. 숙소는 전통 료칸이나 작은 민박이 많고 현지인들의 따뜻한 환대가 넘치고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마을 노포식당에서 즐기는 소박한 제철재료의 식사는 혼밥 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츠와노는 매년 4월 초에 전통 궁술 축제가 열리는데 벚꽃 만개가 예상되는 4월 첫째 주 일요일에 츠와노 와시바라 하치만구 신사에서 일본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전통 기마 궁술 야부사메 행사가 열립니다. 벚꽃 나무가 늘어선 오래된 활쏘기 전용 주로를 무사 복장의 기마 궁수들이 말을 타며 활을 쏘는 장면들이 멋지게 펼쳐집니다.
이 야부사메 벚꽃 축제는 오전, 오후 두 차례 모두 무료로 관람이 가능합니다. 행사 당일에 츠와노 역에서 신사 근처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되니 이용한다면 편리할 것 같습니다.
츠와노 가는 길은 도쿄나 오사카에서 신칸센으로 신-야마구치역까지 가서 JR 야마구치선으로 환승하여 1시간 정도면 츠와노 역까지 올 수 있습니다.
*여행 일정 팁: 최소 1박 2일 일정을 권장합니다. 축제 전날 와서 여유롭게 마을을 둘러보고 이튿날 오전부터 야부사메 행사를 구경한 후 오후 열차로 이동합니다. 4월 초의 츠와노는 일교차가 크므로 아침저녁으로 가벼운 재킷을 준비하면 좋습니다.
2. 가쿠노다테(Kakunodate, 아키타현) - 4월 말 만개하는 토호쿠의 벚꽃길
일본 토호쿠 지방의 아키타현 가쿠노다테는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 거리가 잘 보존되고 있는 고즈넉한 소도시입니다. 특히 봄이 되면 도로변과 강변의 벚꽃 터널이 관광객들을 불러들입니다. 규모는 작으나 매우 인기 있는 장소로 해마다 백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네 자체가 워낙 한적해서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스트레스 없이 여유로운 벚꽃 산책을 즐길 수 있다고 하는군요. 이곳은 남부 도시들보다 벚꽃이 늦게 찾아오는데 만개 시기는 보통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입니다.
대표적인 벚꽃 명소 거리는 크게 두 군데가 유명합니다.
부케야시키 거리는 검은 목조 담장과 고즈넉한 집들을 배경으로 연분홍색 시다레자쿠라가 늘어진 풍경이 볼 만하고, 히노키나이 강변의 벚꽃둑은 약 2킬로미터에 걸쳐 소메이요시노 벚꽃나무 400여 그루가 터널을 이루며 멋진 산책로를 형성합니다. 석양의 벚꽃길도 밤의 라이트 업된 강변 벚꽃 길도 색다른 운치로 즐길거리라고 하니 꼭 카메라 챙겨서 잊지 못할 인생 샷 몇 컷쯤은 확보하고 온다면 좋겠습니다.
이곳은 JR 아키타 신칸센 정차역이 있어 접근성이 좋고 도쿄에서 약 3시간 소요됩니다. 역에서 하차해서 도보로 10여분 남짓이면 사무라이 거리에 도착한다고 하니 혼자서 다녀오기에는 그만인 듯합니다. 만약에 숙박을 한 다면 소도시다운 지역 민박과 료칸, 비즈니스호텔 등 적당한 곳을 미리 예약하고 이용하면 됩니다. 숙박이 어려운 경우에는 인근 도시에서 당일치기도 가능하다고 하니 본인의 일정에 맞추어 적절하게 일정을 고려하면 되겠습니다.
*여행일정 팁: 벚꽃 절정시기인 4월 하순에서 5월 초 사이에 방문하고, 특히 주말 저녁 무사 가옥 거리의 벚꽃 조명이 켜지는 예쁜 모습을 담아 오시면 좋습니다.
3. 다카마쓰(Takamatsu, 카가와현) - 아름다운 정원, 리츠린 공원의 벚꽃 향연
시코쿠 카가와현의 중심 도시인 다카마쓰는 우리나라 여행자들에게 우동 천국으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혼자 머물기 좋은 가성비 비즈니스 호텔과 사누키 우동 맛집이 즐비한 이곳은 봄에 벚꽃을 즐기며 한가로이 머물다 오기에 안성맞춤인 소도시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어느 여름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시내에 머물면서 리츠린 공원과 맛집을 방문하고 페리를 타고 근처 섬 투어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리츠린 공원은 하루종일 있어도 좋을 만큼 규모도 크고 잘 꾸며진 일본식 정원을 뽐내고 도시 곳곳에 노포 우동집들은 착한 가격과 풍미가 여행자들의 입맛을 돋워줍니다. 여기에 4월의 벚꽃이 어우러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될 듯합니다.
리츠린 공원은 에도시대부터 가꾸어졌다고 하며 소나무숲과 연못, 다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이 가히 환상적입니다. 공원 안에 약 300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하니 분홍빛으로 물든 정원이 어떨지 기대가 됩니다. 공원 내 연못에는 일본의 전통 배를 타는 프로그램이 운영 중인데 사공이 직접 노를 저어주며 정원 연못을 유유자적 노니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3월 말에서 4월 초 시즌에 맞추어 야간 벚꽃이벤트가 열린다고 하니 자세한 일정은 공식 웹사이트를 확인한 후 방문하시길 권합니다.
*여행일정 팁: 하루 일정으로 낮과 밤 두 번 리츠린 정원을 방문할 것을 추천하고 다카마쓰의 사누키 우동 투어도 해 볼만합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카마츠 근처의 현대 예술과 건축, 자연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나오시마 섬 투어도 좋습니다. 나오시마는 안도 타다오가 디자인한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과 한국의 현대 예술가인 이우환 미술관,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조각 등으로 매우 유명한 예술 프로젝트 섬입니다. 다카마스에 머물면서 하루 일정으로 투어를 다녀오는 것도 예술과 함께하는 일정으로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상으로 일본 소도시에서 봄의 벚꽃을 즐길만한 일정을 알아보았습니다. 3월 하순에 남쪽부터 시작해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벚꽃 시즌을 즐기시는 데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25년 예상 개화 시기는 도쿄가 3월 24일경, 오사카는 3월 말 개화, 4월 초 만개하고, 북부 센다이는 4월 초~중순, 삿포로는 4월 말에서 5월 초로 예상하고 있습니다.